베일벗은 천부경 - 제1장 천부경의 기원과 전래 3 > 카발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에소테릭

 

카발라

베일벗은 천부경 | 베일벗은 천부경 - 제1장 천부경의 기원과 전래 3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이트로즈 작성일15-03-01 13:13 조회1,014회 댓글0건

본문

출처 : http://blog.naver.com/eyeinhand

베일벗은 천부경 - 제1장 천부경의 기원과 전래 3  베일벗은 천부경 

2013/10/28 11:27

복사http://blog.naver.com/eyeinhand/10178826969

전용뷰어 보기

제1장 천부경의 기원과 전래 3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우리의 모든 정신문화가 철저히 유린되었다조선사 편수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상고사가 치밀한 계획 아래 왜곡축소되었고 이때 불타 버린 민족 사서들만 해도 수십만 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암흑시대에 계연수에 의해 <환단고기>가 편찬되고 천부경의 묘향산 석벽본이 발견탁본되었다는 점이다. (이 탁본은 현전하지 않는다.)

 

계연수(?-1920)는 일제 강점기의 수도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그는 1911년 각기 따로 전해져 오던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합편하여 <환단고기桓檀古記>라 이름하였다.

그는 <환단고기범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또 저 천부경과 삼일신고 두 책의 전문全文과 함께 편중編中에 있어 실로 낭가郎家의 입장에서 보면 유가의 대학중용과 비교할 만한 것이다오호라환단 이래 전하여 온 삼일심법三一心法은 참으로 이 책에 있는 바모름지기 태백진교太白眞敎가 다시 일어날 토대가 되지 않을 것인가손도 저절로 춤을 추고 발도 저절로 춤추고 흥겨워 소리 지르고 싶으니 기쁨에 미칠 지경이로다.

 

<환단고기>의 발문에는 또한 이렇게 씌어 있다.

 

오로라천부경홍익훈弘益訓신고神誥전계佺戒가 오히려 남아서 명명하게 나를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심법이 되고 당당히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대전大典이 되는구나때문에 천하는 모두 감복하여 이를 존숭하여 신성하다고 일컫는다그런데 동토東土의 유가儒家는 불가佛家와 더불어 고전古典에 어둡고 작은 성취 달콤함에 빠져 서토西土에 무릎 꿇고도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뒤에 이 책을 보는 자 반드시 숙연히 일어서 공경할 것이다.

 

계연수는 1916우연히 묘향산에서 천부경의 석벽본을 발견하고 그것을 탁본하여 서울 단군교당에 서신과 함께 보내었다서신의 내용이 흥미롭기 때문에 전문全文을 소개한다.

 

단군교당 도하道下

 

일찍이 스승께서 제게 이르시길, ‘동방의 황무지를 개척한 시조 단군은 신인神人이셨다천부삼인天符三印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덕화를 크게 편지 어언 사천년이 되었으나 이 일이 혼몽한 상태로 흐려 있어 삼인三印이 어떤 물건이며 얼마나 보배로운 것인지를 알 수 없노라천부天符는 바로 단군께서 교화를 펴신 글이다이제야 세상에 밝히게 되었는데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 재액災厄이 길상으로 바뀌고 선량치 못한 사람이 어질고 착하게 되느니라오랫동안 도를 이루면 자손이 번성하고 장수와 부가 이어져 반드시 신선의 결과를 얻을 것이다어리석은 이라 할지라도 이 글을 한 본 지니고 있으면 재화를 면하리라.’고 하셨는 바제가 이 말씀을 명심하고 그것을 구하려 하였으나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품을 수련하고 약초 캐기를 일삼아 십여 년간 명산에서 구름처럼 떠돌다가 지난 가을 태백산(묘향산)에 들어가 깊은 골짜기를 유심히 걸어감에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렀는데 시내 위의 석벽에 고각古刻이 있는 것을 발견한지라 덮인 이끼를 손으로 쓸어내니 글자의 획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데 바로 천부경이었습니다.

 

저는 두 눈이 홀연히 밝아지며 절을 하고 꿇어 앉아 경건하게 들여다보니 한편으로는 단군의 보배로운 글임에 기뻤고 또 한편으로는 고운孤雲 선생의 신기한 자취라 매우 기뻤습니다충만한 마음으로 이를 얻음에 저는 비로소 스승께서 헛된 말씀을 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백 걸음 간격으로 돌을 쌓아 길을 표시해 놓고 돌아와 종이와 먹을 준비해서 다시 산속에 들어갔더니 전날 갔던 곳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동서로 찾다가 지쳐 마침내 산신령에게 빌며 사흘 밤을 지내고 찾으니 때는 병진년 9월 9일이었습니다

 

겨우 한 벌을 박으니 글자가 심히 흐릿하여 다시 박으려 하였으나 구름과 안개가 문득 일어나는지라 이에 그만 산사山寺로 돌아와 밤이 새도록 풀어보려고 하였으나그 요령을 알지 못하였으니 스스로 돌아보건대 젊어서 배움이 짧고이제는 늙어 총명함이 떨어지므로 다시 연구하여 그 도를 얻을 수 없고 다만 입으로 읽을 뿐이었습니다.

 

마침 서울에서 온 사람이 이르길 서울에 단군교가 있다는 말을 들어 심히 기뻐 마음 같아선 직접 가보고자 하였으나 걸음이 어긋나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덧없이 봄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길에서 서울 가는 사람을 만나 이 탑본塔本을 보내드리오니 바라건대 이 글 뜻을 풀어 중생들에게 가르치면 그들이 꼭 복록을 얻고 교운敎運이 이로부터 일어날 것이니 그윽이 귀교의 하례가 될 것입니다.

 

또 들으니 단군 때에 신지가 지은 옛 글이 고구려에 전하여졌다 하니 꼭 구하여 만일 얻으면 응당 보낼 예정이오나 얻으면 다행이요 얻지 못하면 보내지 못하게 될 것이니 양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성심으로 수도하기를 빌면서 정사 정월 초열흘날

 

향산유객香山遊客 계연수 재배

 

이렇게 하여 발견된 석벽본 천부경의 내용은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학자 전병훈에게도 전해지고 1920년 천부경에 대한 주석이 그의 저서 <정신철학통편첫머리에 실려 출판되었다이것이 활자화된 최초의 천부경 주해서이다(5)

 

천부경의 원문이 현재까지 전해오는 것으로 <태백일사>의 것 외에 최치원의 사적본事蹟本이 있다이 사적본은 1925년 최치원의 후손최국술이 편찬한 <최문창후전집>에 수록된 것이다천부경은 그 책의 고운선생사적편에 그 유명한 난랑비문과 함께 실려 있다.

 

고운선생사적」 편의 단전요의檀典要義’ 항목에는 천부경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태백산에 단군 전비篆碑가 있다.

어렵고 읽기 힘들었다고운이 그것을 번역하였다.

 

현대

 

오늘날 천부경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79년 단학회 6대 회장 이유립에 의해 <환단고기>가 다시 편찬되면서부터이다그러나 80년대 학자들 사이에서 <환단고기>가 위서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따라서 <환단고기내에 실려 있는 천부경 또한 진위 여부가 문제되고 있다.

 

오늘날 실증사학계에 의해 <환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등이나 천부경이 그 역사적종교적철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 내용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쉽게 말해 학문적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때문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서는 상고시대 우리 민족의 종교철학 사상이 바로 서양 신비 철학 또는 종교의 뿌리인 카발라였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따라서 우리 민족의 고대 종교철학 사상에 새로운 학문적 접근의 토대가 본서를 통해 마련되리라 본다.

 

*****************************************************************************

 

5)

 

1899년 계연수는 이미 <태백일사>에 나온 천부경을 보고 <천부경요해>라는 표제로 나름대로 주해를 단 바 있다따라서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천부경에 대한 최초의 주해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3,089
어제
3,863
최대
3,863
전체
607,368
그누보드5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COWHITEROSE.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